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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강 나루터
 
   
 

  1. 거북선의 유래
  2. 거북선은 잠수함이냐
  3. 입으로 대포를 쏘고 연기를 토했는가
  4. 노가 몇대냐
  5. 돛이 있었느냐
  6. 한강거북선의 크기가 얼마나 되며 몇명이나 탈 수 있느냐
  7. 속력은 얼마나 되느냐
  8. 철갑선이냐
  9. 이순신 장군이 직접타고 지휘를 하였나
  10. 임진왜란때 거북선은 몇척이였나
1. 거북선의 유래(由來)


일찍이 太宗 一三年( 西紀 一四一三 ) 二月六日에 「 임금이 임진강을 지나면 귀선 ( 龜船 )과 왜선( 倭船 )이 서로 싸우는 형상을 구경했다 」( 太宗實錄卷二五 )고 했 고, 또 태종 一五年 ( 西紀 一四一五 ) 七月一六日에도 좌대언 탁신 ( 左代言 卓愼 이 임금께 아뢰되

「 구선 ( 龜船 )의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치지를 못하므로 과연 승전할만한 좋은 방식이라 할 수 있사오니 다시금 튼튼히 만들도록 명령하시와 전쟁 에 이길 수 있는 기구를 갖추게 하소서 ( 太宗實錄卷三O )

그것으로 보아 구선 ( 龜船 ) 의 이름과 제법이 충무공 이전, 이미 一八O年 전에서 부터 있었고,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더 먼저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왔던 것인지도 모른다.

말하자면 우리 해군 전체의 오랜 전통은 물론이요, 거북선만 가지고도 그 유래가 이같이 오래였던 줄을 알 수 있다.

忠武公 이전 우리들의 옛 조상이 이미 왜적을 막기 위해서 특이한 구상법으로 추 왜별맹선이니 귀선이니 하는 신기한 배들을 만든 일이 있었던 그것이요, 또 충무공 이 우리 해군의 오랜 전통을 완전히 이어 받아서 다시 그 위에 보다 더 훌륭하게, 보 다 더 튼튼하게, 보다 더 새롭게, 창안하여 완성시켜 놓은 중에서도 독창적인 거북선 의 상장 설치는 충무공 자신이 임금에게 보고한 장계의 내용 중 「 특별히 거북선을 만 들었사온데 ( 別制龜船 ) 」라는 점으로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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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. 거북선은 잠수함이냐


우리는 역사적인 것을 되새길 때 자칫하면 오늘을 염두에 두는 경향이 가끔 있는데 이점은 올바른 판단을 그르칠 수 있는 요인이 된다. 즉 이순신의 거북선에 관한 판 단은 15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 기준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.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이니까 그 당시는 오늘과 같은 엔진이 발명되지 않았으므로 물속에서 항해 를 할 수 없었기에 잠수함일 수 없다. 다만 잠수함의 시초가 됨직 하다는 이론은 그 럴듯 하오니 즉 그 당시의 모든 선박들은 갑판위의 구조는 그저 루각을 세웠을 정도 이지 이순신의 거북선 상장처럼 갑판위에다가 견고한 집은 지은 것은 획기적인 창안 으로서 오늘의 잠수함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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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. 입으로 ( 龍頭 ) 대포를 쏘고 연기를 토했는가?


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창제할 때는 「 前設龍頭口放大砲 」 앞에는 용머리를 붙여 그 입으로 대포를 쏘게 하고-. 로 되어 있다.

그 후의 거북선에 관한 문헌에는 입으로 유황과 초연을 토했다는 기록도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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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. 노가 몇 대냐

井邑 현감에서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첫 임지가 전라좌수영 ( 全羅左手營 )이 있던 여 수 ( 麗水 ) 였다. 그래서 이영에 소속된 거북선을 전라좌수영구선 ( 龜船 ) 이라 불렀다.

이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노는 좌 ( 左 ) 우 ( 右 )로 각 여덟씩 모두 16이 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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5. 돛이 있었느냐


범장 ( 帆裝 )의 주범 ( 主帆 )과 종범 ( 從帆 )의 둘을 세웠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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6. 한강 거북선의 크기가 얼마나 되며 몇 명이나 탈 수 있느냐


뱃머리 ( 船首 )에서 배꼬리 ( 船尾)까지 25.5m, 전체높이 ( 底板~ 板 ) 6.5m, 배의 넓이 ( 船幅 ) 8.8m, 승조원 ( 乘漕員 ) 150여명, 상장넓이 ( 上粧幅 ) 10.3m 총 t수 약 200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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7. 속력은 얼마나 되느냐


최고 속력 약 13노트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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8. 철갑선이냐


오늘날까지 거북선에 관한 문제 중 가장 어려운 대목이 이 「거북선의 철갑」문제 이고 보면 이점은 가볍게 지나칠 것이 아니라 상상력까지도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는데 철갑이라는 개념이 자칫 지나쳐서 오늘날의 모든 선박과 군함 등이 철판으로 만들어진 철선 이다가보니 이 철선 ( 鐵船 )과 거북선을 철갑선 ( 鐵 甲船 ) 이라고 말하는 그 뜻의 풀이를 같은 말 ( 同義語 )로 즉 구갑 ( 龜甲 ) 인갑 ( 鱗 甲 ) 철갑 ( 鐵甲 )이니 하는 이 갑 ( 甲 )이라는 낱말은 거북선의 철갑 문제를 이야기 함에 있어서 그 개념부터 바로 한 다음 오늘날의 조선학적인 관점에서 잠깐 벗어나 그 때 즉 4백년전의 우리나라 실정을 바탕으로 해서 고찰해 볼 때,


서울 大學校 工學大學 朴惠一교수의 ( 李舜臣龜船의 鐵製甲과 李朝鐵甲의 現在原型 과의 對比 ) 논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이 조때의 성문과 장롱이나 문갑 등 의 철장식의 형태를 거북선의 철갑과 연관시켜서 본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것이라 하 겠다. 당시 상황으로서는 거북선이 판옥선에 상장을 올린 형태의 기발하고도 획기적 인 고안인 것이다. 뱃머리로판에다 장식한 귀두 ( 鬼頭 )는 서구 쪽에서 선박에다가 용 이니 새니 인어니, 또 영국의 고대선박에는 개 ( 犬 )의 형상의 조각물을 부착 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순신이 왜적의 침범이 틀림없다고 판단하여 이에 대비한 즉 엄청나게 큰 힘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바다로 오지 않을 수 없는 적을 막지 않으면 나라의 운명이 위태롭다는 점을 그 당시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터이라 강적에 대항하기 위한 작전의 군비 보강이 거북선 건조이고 보면 기록에만 근거를 두기 보다는 그 때의 상황을 살펴볼 때 개판에 다 쇠못 ( 釘鐵 )을 꼽았다는 사실은 아마도 전무후무한 착상이요 적의 장점인 접근 전에 대비한 훌륭한 방어책이었던 것이다.

그리고 돛줄을 매기위한 쇠고리를 달았다거나 방패판에 쇠부치를 부쳤다거나, 특히 돛대를 세운 것이 명나라 화옥 ( 華鈺 )의 해방의 ( 海防鐵 )에 적힌 기사에는 「조선 의 거북선은 돛대를 세우고 눕히기를 마음대로 하며 역풍이 불거나, 퇴조 때에도 다 닐 수 있다」고 신기하게 평가된 기록으로 남았으나 그런 부분도 당연하다는 듯 아 무런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고 이충무공 전서의 안설문에서도 기록되지 않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굳이 쇠판을 덮고 그 위에 쇠못을 심었다 라고 했어야만 철갑 선이라는 풀이는 오늘을 기준으로 한 판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라 여겨지며 그 당시 싸움의 상대국인 일본의 기록에서 찾아보면 지마군기 ( 志摩軍記 )에는 「큰 배들 가 운데서 3척이 “쇠로써” 장식 했더라」고 기록되어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거북선은 중요한 부분 부분을 쇠로 장식한 “철갑선”이라 하겠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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9. 이순신 장군이 직접타고 지휘를 하였나


이순신 장군이 직접 타지 않았고 지휘장도 따로 임명하였다.

거북선은 적진으로 뚫고 들어가는 즉 오늘날 육지 전에서 소총 부대 속으로 탱크가 돌진하는 형상이기에 사령관인 이순신은 지휘선을 탔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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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0. 임진왜란 때 거북선은 몇 척이였나


당시의 기록으로 보면 3척은 확실하다. 거북선의 돌격장의 임무를 띠었던 장수의 이름이 불과 2,3인 정도로 나타나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서도 3척이나 5척 이내였던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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